이태원이 발칵 뒤집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다. 대중의 분노는 당연하다. 힘겹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힘썼지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 분노는 합당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이 시국에 클럽을 간 2030에게, 문을 열고 손님을 받은 사장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게다.
이태원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용인 66번째 확진자가 '게이클럽'을 여러 곳 돌아다닌 것도 불을 붙였다. 가뜩이나 성소수자 이슈로 사회가 한동안 시끄러운 마당에 게이로 추정되는 사람이 이태원을 돌아다녔으니 대중의 분노는 확진자에게서 '게이클럽'으로 향했다. 클럽을 간 사람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게이클럽을 찾아 폐쇄시켜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온다. 사실 게이클럽을 폐쇄하는 게 사태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이 주장이 나온 배경 역시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문제는 따로있다. 게이클럽의 폐쇄는 이태원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이태원이 지금처럼 '핫플'이 될 수 있었던 것, 다른 지역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다양성 때문이다. 미군에서부터 해외에서 온 노동자들이 이태원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기에 자신의 존재를 꽁꽁 숨기던 성 소수자들이 이곳에 모이면서 다양성을 더했다. 이를 기반 삼아 비주류 문화들이 이태원으로 유입됐고,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문화, 옷 스타일, 분위기가 형성됐다. 결국, 지금의 이태원이 생긴 데에는 성 소수자들의 역할도 상당하다.
코로나19 시국에 이태원 클럽을 간 것을 잘했다고 보기 어렵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찜방'이라고 표현되는 수면방에서 행해지는 비정상적 성행위 역시 논란거리지만 게이클럽을 폐쇄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게이클럽을 폐쇄한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특정 시설을 폐쇄한다면 사업장을 운영할 자영업자도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탄압이 탄압으로, 억압이 억압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이태원 문화를 형성하는 데 공이 있는 각종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 잘잘못을 묻되, 공간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특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정 문제가 생긴다고 색을 지워나가다 보면 어느새 남아있는 것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굵직한 역사를 남긴 로마 제국이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양성'이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도시국가를 이뤘고, 다른 나라를 정복한 뒤에도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겐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들의 장점을 흡수해 로마는 번성했다. 편을 가르고, 배척하고, 특정 계층을 탄압했다면 우리가 알던 로마는 없었을 것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다양성을 지워나간다면 제국은 번성하지 못한다. 이태원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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