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밤] 성지 '프로스트'..."오늘보단 내일을 위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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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의 밤] 성지 '프로스트'..."오늘보단 내일을 위한 공간"

클럽 에피소드

by 홍자쓰 2020. 3. 1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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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여기는 다 연예인만 모인 거 같다."

 

"그러게. 다들 장난 아니네."

 

바에 자리를 잡고 하이네켄 한 병을 홀짝 거리면서 주위를 살핀다.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한 공간에 이렇게나 많다니. 외모에 자신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이곳에 온 것일까. 2시간 동안 같은 공간을 둘러보는데 지루하지가 않다. 사람 구경. 이것이 사람 구경이구나. 두 눈을 꿈뻑꿈뻑 깜빡인다. 술이 취한 탓일지도 모른다, 생각해서다. 그런데 아니다. 그냥 이들이 잘난 것이다.

 

'이태원 예찬론자'들은 하나 같이 '프로스트'를 꼭 가라고 입을 모은다. "대체 거기가 뭐하는 곳인데 그렇게 유명해?"라고 물으면 그저 가보면 안다고만 답한다. 궁금증이 커진다. 거기만 가면 뭔가가 되는 것일까. 왜들 입이 닳도록 그곳을 추천하는 것일까. 

 

해밀턴 호텔을 지나면 왼쪽에 언덕 하나가 나온다. 그곳을 올라가 다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이태원의 터줏대감 '프로스트'가 자리한다. 클럽이라기 보단 펍에 가까운 곳이다. 11시 30분만 돼도 줄이 선다. 역시나 등치 좋은 형님 한 분이 수문장처럼 지키고 서있다. 특이하게 방호복(?)인지, 방탄조끼 같은 입고 있다.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나라가 아닌데... 하긴 대비는 철저할수록 좋다.

 

신분증을 보여주니 도장 하나를 손목에 찍어준다. 입장료는 없다. 공짜다. 아주 좁은 스테이지에 사람들이 서서 리듬을 타고, 스탠딩 테이블과 착석할 수 있는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앉아 맥주병과 술잔을 올려놓는다. 전에는 돈을 내지 않고도 쓸 수 있는 자리가 많았지만 이젠 아니다. 사실 돈을 쓰지 않으면 놀기가 어려운 곳이 프로스트다. 

 

제약이 많은데 발 디딜틈이 없다는 것은 그만한 장점도 있다는 뜻. 그중 하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외모나 직업, 멘탈이 괜찮은 사람이 많다. 형들 중에는 본인 차 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일도 많은데 고급 외제차를 타는 사람도 정말 정말 많다. 간호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부터 승무원, 연구원 등 대기업에 일하는 사람도 즐비하다. 학생들이 비벼보기엔 쉽지 않다. 지갑의 두께나 나이 모두 차이가 난다. 

 

어라? 건너 테이블에 앉은 형이 드디어 한 여자와 30분 째 대화를 나눈다. 클럽과 달리 대화 나누기가 수월하다는 증거다. 저 형은 지나가는 여자마다 손목을 잡고 술잔을 권했다.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시간이 10분도 안됐을 터. 그런데 지금은 30분째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여성이 친구를 따라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형은 핸드폰을 내밀어 번호를 받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프로스트는 이 형처럼 오늘보단 내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이다. 클럽처럼 찐하게 춤을 추거나 키스를 하는 일은 드물다. 원나잇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낮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오늘 자신이 원나잇을 목적으로 이태원을 간다면 프로스트는 다소 '비추'다. 물론 이곳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확률적'으로 낮다. 대신 다음 주에 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소통하기가 수월하니 열심히만 한다면 장기 계획을 짜보기도 좋다. 

 

다행히 나도 소득이 있다. 4명에게 번호를 받았다. 벌써 한 명에게 차단 당했지만 이 정도면 실패한 정도는 아닐 터다. 샤워하는 동안 수문장 형님이 찍어준 도장이 안 지워져 현타가 오지만 연락을 주고받을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짜증은 덜 난다. 목요일에도, 사람이 빠지는 시간에도 실내가 가득 차는 프로스트. 예찬론자들이 왜 가보라는지 이제 알겠다. 코로나19에도 가득차는 걸 보니 또 알겠다.

 


◈한 줄 평

천하통일. 제갈량은 형주를 기점으로, 우리는 프로스트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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