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가요가 쏟아져 나오는 잠실새내 감성주점 헤라(HERA).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귀 양 옆에 이어폰을 끼고 자신만의 댄스타임을 갖고 있다. 분명 둘이서 온 거 같은데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홀로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드는 그는 여자가 지나갈 때마다 팔목을 잡은 뒤 다른 한 손으로 귀에 꽂힌 이어폰을 뽑고 그녀들 귀에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인다. 여자는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려 연신 양 팔로 그의 손을 뿌리친다. 다시 이어폰을 낀 그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다.
서울 송파구 잠실내에역 근처에 있는 '헤라'는 분위기가 고루하다. 90년대 가요가 나오는 '감성주점'이니 당연지사. 그곳을 찾는 사람들도 조금씩 올드한 느낌이 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나이 많은 사람이 모여도 비교적 활기차고 트렌디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가 있는 반면 사람과 장소 모두 '올드한' 곳도 있다. 헤라가 바로 그러하다.
시끄러운 감성주점에서 이어폰을 낀 사람이 드물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 자체가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는 헤라.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승률이 좋기 때문이다. 트렌디하고 훈훈한 외모를 뽐내는 수컷이 많지 않아 스스로 외모가 괜찮다고 여긴다면 헤라에서 추억을 쌓기 좋다. 90년대 노래에 맞춰 춤만 추기도 하지만 감성주점에 맞게 훈남과의 하루를 보내러 찾으러 오는 여자도 많다.
감성주점이니 만큼 자리가 없으면 입장해서 고생한다. 자리가 없는데 헌팅이 될 리 만무하다. 몇 차례 오고 가려면 내가 머물 의자는 필수로 있어야 할 터. 남자 기준 입장료 1만 원에 안주와 술까지 하면 돈은 솔찬히 든다. 헌팅이 성사되면 조용한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니 그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발라드 시간에 자리를 비우면 나간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도 명심해야.
코로나19 전, 헤라는 전반적으로 마이너한 감성이 짙었다. 감성주점이 의례 그러하듯. 수려한 이성을 만나려는 욕심은 버리는 게 좋다. 연령대가 높고 다들 한 가닥 놀아본 사람이 많이 오므로 즐겁게 논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잊지 못할 밤이 피어날지도. 개방적이고 잘 노는 사람이 모여있으니 승률 좋은 구장을 찾는다면 단연 헤라다.
◈한 줄 평
짧은 서론과 긴 본문으로 밤을 논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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