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술 마시자고 우리 자리로 왔어. 맥주 간단히 마시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친구와 잡은 자리에 여성 두 명이 앉아있다. 한 명은 친구 옆, 또 한 명은 내 자리 옆. 영문 모를 일에 친구는 상황을 먼저 설명했다. 산골 깊은 어둠이 공간을 감싸는 이곳에서 옅은 조명만이 상대 얼굴을 희미하게 비춘다. 나이는 30대 초반. 2명이서 4명이 된 술자리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서울 강서구 강서구청은 '먹자골목'이라고 불리는 유흥가가 존재한다. 구청 주위에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기 십상이지만 막상 가보면 건대입구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가 펼쳐진다. 과거에는 룸 술집을 비롯해 별이빛나는밤도 있었지만 지금은 문을 닫은 모양이다.
유일한 감성주점은 '밤과 음악사이'(밤사)다. 파주와 일산을 포함해 양천구, 강서구 사람이 밤사를 찾는다. 연령대는 대개 30대 이상. 20대도 종종 보이지만 일행 중에 30대가 반드시 포함돼 있다. 애초에 20대들이 올만한 장소가 아닌 데다 목적이 뚜렷해 가볍게 들렀다 지나가는 술집은 아니다.
밤사 방문 목적은 분명하다. 헌팅과 춤이다. 여성들도 헌팅을 염두에 두고 밤사를 찾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드는 남성이 있으면 먼저 "술 한 잔?"을 외치는 분위기다. 헌팅이 아니라면 춤을 추고 음악만 듣는 사람도 있다. 댄스타임에 쉴 새 없이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데 이들은 타인과 말조차 잘 섞으려 하지 않는다. 간단한 말 한마디 던져보면 이 사람이 이성을 만나러 왔는지, 춤을 추러 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대부분 감주가 그렇듯 발라드 타임에 자리를 비우면 자리가 사라진다. 밤사는 입장료 1만5000원을 내면 술 한 잔을 마실 수 있는데 자리가 없더라도 입장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자리를 못 잡으면 발라드 타임에 눈치게임을 벌이다 빈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새로운 이성과 술을 마시려면 자리는 필수. 밤사만의 올드한 분위기를 느끼다 밖을 나가려는 경우가 많으니 내 자리 하나쯤은 필요하다.
내 자리에 이성을 불러들이기는 어렵지 않다. 이곳저곳을 살피며 같이 술 한잔 마시자로 말을 붙이다보면 어느새 함께 어우러저 술잔을 부딪히고 있을 게다. 복병은 정적인 사람도 많다는 점. 자리까지 불러들이기는 쉽지만 시끄러운 분위기에서 술마저 마시지 않는다면 친해질 방법은 없다. 시간을 보내다 마음이 통할 경우 밖으로 나가 2차를 도모하면 될 터. 이후에 어떤 서사가 펼쳐질지는 하나님도 모를 게다.
◈한 줄 평
진짜 어른들이 즐기는 직선 고속도로에서의 쾌속 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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